나는 예술의 역사 속에서 간과될 수 없었던, 실로 많은 진화를 거친 ‘빛과 색채’라는 화두 아래 회화, 설치, 오브제 등의 매체로 작업하며 나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주된 관심사인 패러디 형식을 더욱 확장하여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의 원본과 복제의 의미, 그리고 나의 작품에 끼친 영향 등을 보여 주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회화로 패러디하고 변형하여 원본과 복제의 관계에 대해 환기시키는 작업이 주를 이루는데 천, 마스킹 테이프, 프린트, 미러지 등의 사용을 통해 물감과의 이질감 혹은 조화를 이끌어 내는 우연적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투명 미디움을 겹쳐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추이에 따른 그림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낸다. 이렇게 제작된 그림을 다시 사진으로 인화하여 그 위에 물감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사용, 또 다른 원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래된 사진이 지시하는 시간성, 과거, 현재와의 관계에 따른 탈색과 인공적인 채색 등으로 환기되는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행하는 색채의 실험인 것이다. 반복되는 패러디가 원본이 되는 프로세스는 결국 어디에나 있는 원본, 하잘것없는 것들이 갖는 의미에 대한 강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이를테면 내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 아버지와 다른 나를 알아내는 것, 어쩌면 내 안에 무수히 담겨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나를 찾는 일에 관한 것이다. 원래의 모습에 대해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대가들의 작품을 찍은 사진들, 최초의 사진가들이 그림의 형식을 따라 하며 찍었던 초상화 사진들, 인터넷 뉴스가 내보내는 가짜 같은 서늘하면서도 뭉클한 이미지들을 패러디하며 마음을 잡아 끄는 색채를 얹고 단 하나의 원작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결국 나로 하여금 회화를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주곤 한다.
1942년작으로 알려진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 ‘뉴욕 시티 1(New York City 1)’은 검은색 선을 이용하여 환영적 공간을 구축한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랑을 주된 색으로 사용하되 간헐적으로 빨강과 파랑을 교차시켜 관람자 앞에 펼쳐 놓았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흰색이 배경으로 다가오지 않는, 같은 무게를 갖는 색들이 상호 작용하여 미묘하고도 견고한 균형을 이루는 평면의 화면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뉴욕 시티 시리즈를 통해 이전의 큐비즘(Cubism)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법을 일구어 내고 있었고 그와 데 스틸(De Stijl) 동료들이 염원하던 조화로운 법칙에 의해 만들어 지는 인간적인 환경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선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는 몬드리안의 수직, 수평선의 구성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을 비롯한 여러 미니멀리즘(Minimalism),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들이 격자(Grid) 문양에 부여하는 영적(Spiritual) 세계와의 연관성을 보여 준다. 20년이 넘게 살아온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그리고 여생을 마감하게 되는 뉴욕으로의 이주는 전쟁으로부터의 해방감과 화려한 도시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감흥을 부여하며 그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자유로움, 절대적 이상미의 추구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몬드리안이 그랬듯 나는 색 테이프를 사용하여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 내었고 빛이 바랜 듯한 여러 색채를 테이프의 배열과 조화롭게 맞추어 채색하여 시간이나 공간의 차이를 지우고자 하였다. 테이프와 테이프처럼 긴 띠 모양을 하고 있는 물감 자국은 인터넷에서 보게 되는 믿기 힘든 사진들처럼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인터넷 상에는 전쟁으로 죽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시체 위에 사진을 찍는 사진 기자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말끔하게 지워진 사진이 다른 웹사이트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닌 것처럼 컴퓨터나 스마트 폰의 모니터 위에서 원작의 조건이 무색해진다는 전제 하에 회화를 제작하고 그것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결국 수직 수평의 선들 너머로 몬드리안이 본 이상적인 세계, 세상을 등지고 홀로 은둔하며 아그네스 마틴이 만들어 낸 미색의 띠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세계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상으로 반신반의하며 보던 그들의 작품을 패러디하며 역으로 인터넷 상으로 보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이미지가, 적어도 그들의 눈물과 웃음에 반응하는 마음들은 가짜 뉴스의 산물이 아닐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그저 사각의 캔버스에 불과했을 지라도, 인터넷 상에서 그들의 감흥이 전달되지 않더라도 몬드리안이나 아그네스 마틴이 그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보았을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미완으로 남겨졌던 몬드리안의 뉴욕 시티 작품들은 1977년경 그의 동료들에 의해 보수되었다고 한다. 늘어진 색 테이프를 다시 붙이며 그들이 느꼈을 무엇이, 그 작은 영향력이 내 그림 속 옹기 종기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윤경 작가노트 중에서
Memories of Colors, With My Back to the World
Gallery H, Daegu, Korea
2020. 11. 3(Tue) - 11. 25(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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